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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작가의 작품세계,줄거리,작품평

by happyiris 2025. 7. 11.

'작별하지 않는다'는 2021년 한강이 발표한 장편소설로,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한 역사적이면서도 내면적인 탐색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한강 작가의 문학 세계와 함께 '작별하지 않는다'의 줄거리, 문학적 평가를 중심으로 소설이 지닌 메시지와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작가의 작품세계 - 침묵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의 서사

한강은 1993년 연작소설 '붉은 손'으로 등단한 이후, 한국 문학계에서 가장 섬세하고 깊이 있는 문체로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그녀의 작품은 주로 인간 존재의 고통, 상처, 기억, 그리고 언어의 한계에 대해 천착하는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채식주의자'로 2016년 맨부커 국제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고, 이후 '소년이 온다', '흰', '희랍어 시간' 등 발표작마다 깊은 통찰과 감성으로 독자들에게 울림을 주었습니다.

한강 문학의 중심에는 늘 '말해지지 못한 것들'이 존재합니다. 그녀는 폭력적 현실에 침묵하는 대신, 고통의 본질을 서정적 언어로 끌어올리는 방식을 택합니다. 특히 사회적·역사적 참사에 맞서는 개개인의 목소리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존재의 연약함과 동시에 존엄함을 드러내는 데 탁월한 감각을 보여줍니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도 제주 4.3 사건이라는 비극을 단순한 기록이 아닌, 인간의 서사로 재구성하여 문학의 힘으로 새로운 감각을 부여합니다.

한강은 그녀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개인과 역사,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 사이의 경계를 문학적으로 탐색합니다. 그녀의 문장은 차분하면서도 서늘하며,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잔잔하지만 깊게 스며듭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러한 한강의 문학 세계가 정점에 달한 작품으로,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서 느껴지는 밀도가 남다릅니다. 이 소설은 단지 제주 4.3이라는 사건을 복원하는 것을 넘어서, 기억의 의미와 슬픔의 윤리를 다시 묻는 작품입니다.

줄거리 - 지워진 기억을 복원하는 여정

'작별하지 않는다'는 두 여성 인물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화자인 경하는 서울에서 대학 강사로 일하며, 제주 출신인 동갑내기 친구 인선과 오랜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선의 어머니는 1948년 4.3 사건 당시 생존자였고, 수십 년을 침묵 속에 살아온 인물입니다. 소설은 인선의 갑작스러운 실종을 계기로, 경하가 인선을 찾기 위해 제주로 향하면서 전개됩니다. 제주에서 경하는 인선의 흔적을 좇으며, 동시에 인선 어머니의 기억 속에 봉인되어 있던 4.3의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한강은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역사적 비극을 거창하게 재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물들의 아주 사적인 기억, 삶의 조각들을 통해 사건의 전모를 그려나갑니다. 인선 어머니가 평생 감추었던 기억, 고통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온 삶의 파편들은 작고 조용하지만 강렬한 진실을 전달합니다. 작별이라는 단어조차 하지 못한 채 살아온 이들의 흔적은, 소설을 통해 처음으로 언어화되며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경하가 인선의 실종을 통해 접하게 되는 제주 4.3의 기억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여전히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의 몸에 새겨진 아픔이며, 아직도 말해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들입니다. 한강은 이 과정을 정제된 언어로 담아내며, 독자에게 고통과 기억의 윤리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실종 사건의 추적이 아니라, 한 인간의 실종을 통해 사회와 국가가 지워버린 진실과 다시 만나는 여정인 셈입니다.

작품평 -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을 말하는 문학

'작별하지 않는다'는 출간 직후 평단과 독자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비평가들은 이 작품이 단순한 역사소설이 아니라, 역사 속 침묵과 고통을 다룬 윤리적 문학이라고 평가합니다. 제주 4.3 사건은 오랫동안 금기시되거나 편향적으로 다뤄졌던 주제였지만, 한강은 이를 특정 이념이나 정치적 입장이 아닌, 인간적인 시선으로 접근하여 보다 보편적인 감정을 끌어냅니다. 인물들의 감정선과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 역시 그 슬픔과 상실의 무게를 체감하게 됩니다.

문학적으로도 '작별하지 않는다'는 매우 완성도 높은 작품입니다. 한강 특유의 시적 언어와 정제된 문장이 긴장감과 서정을 동시에 전달하며, 독자에게 깊은 몰입감을 줍니다. 특히 작품 전체에 흐르는 절제된 감정 표현은 과도한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독자의 감정을 건드리는 묘한 울림을 남깁니다. 작품 속 인물들은 대부분 조용하고 내성적이지만, 그 안에 담긴 고통의 깊이는 매우 강렬하여 오히려 독자의 상상력과 감성을 자극합니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도 "기억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목 그대로, 이별이라는 행위를 거부함으로써 존재를 지키고자 하는 몸부림이자 애도의 서사입니다. 독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 말해지지 못했던 존재들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고, 동시에 자신 안의 기억과 상실에 대해서도 성찰하게 됩니다. 문학의 사회적 기능과 감성적 확장을 동시에 이룬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입니다.

결론 - 침묵을 건너는 문학의 용기

'작별하지 않는다'는 단순히 제주 4.3을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한강 문학의 깊이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며,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말하는 문학의 본질을 되새기게 만듭니다. 화려하거나 자극적인 묘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내면을 흔드는 진실을 강력하게 전합니다. 작별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존재들, 기억 속에 묻힌 이름들을 소환해 내는 한강의 문장은 침묵을 건너는 용기의 서사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상처들을 마주할 때, '작별하지 않는다'는 문학이 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접근 방식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기억과 슬픔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어떻게 다음 세대에 전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됩니다. 침묵 속에 머물던 고통을 끌어올려, 비로소 진정한 애도와 작별을 시도하는 이 소설은 한국 현대문학에서 반드시 읽어야 할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